칸트 형벌론과 사형제: 수능 윤리교육에서 생기는 어려움
권장 인용 손제연, 「칸트 형벌론과 사형제: 수능 윤리교육에서 생기는 어려움」, Jeyoun Son: Essays & Public Notes, 2026. 5. 24., https://jeyounson.github.io/essays/kant-punishment-and-ethics-education/ (접속일: 인용자가 실제로 확인한 날짜).
영문 표기는 Jeyoun Son, “Kant, Punishment, and Difficulties in CSAT Ethics Education,” Jeyoun Son: Essays & Public Notes, May 24, 2026. 이 글은 웹 공개 글 또는 public note로 인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글은 윤리과 과목들을 가르치는 한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칸트의 형벌론과 사형제 관련 수능형 선지를 공부하다가, 서로 잘 맞지 않아 보이는 두 종류의 선지 앞에서 멈칫했다는 이야기였다. 한쪽에서는 “형벌에 대한 범인의 동의가 형벌권의 기초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사형은 살인범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는 정당한 형벌이다” 또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목적적 존재로 대우되어야 한다”고 한다. 범죄자의 동의가 중요하지 않다면서, 왜 그를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한다고 말하는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면서, 어떻게 그를 인격으로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마 비슷한 선지를 공부해 본 교사나 학생이라면 한 번쯤 이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칸트는 응보주의자이고, 살인자에게 사형이 정당하다고 보았으며, 형벌은 범죄자나 사회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외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범인의 동의가 형벌권의 기초가 아니다”, “사형은 살인범의 인격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범죄자는 현상적 자아이지만 목적적 존재다” 같은 표현이 함께 나오면 문제가 어려워진다. 각각의 문장은 시험 대비 요약으로는 익숙하지만, 서로 연결하려고 하면 금방 이상해 보인다.
이 혼란은 단순한 암기 부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이 선지들을 진지하게 연결해 보려고 할 때 생기는 좋은 혼란이다. 문제는 동의, 입법, 책임귀속, 공적 정의, 인격성 존중이라는 말들이 같은 층위에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어떤 선지는 형벌권의 근거를 묻고, 어떤 선지는 처벌받는 자의 인격적 지위를 묻고, 또 어떤 선지는 사형제에 관한 칸트의 응보주의적 결론을 묻는다. 이 층위를 나누지 않으면, 칸트는 한편으로는 범죄자의 동의를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자가 자기 사형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학생들이나 윤리과 교사들에게 특정 문항의 정답과 풀이 방법을 빠르게 알려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단순히 “칸트가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 확인해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칸트의 형벌론과 사형제 논의가 한국 고등학교 윤리교육과 수능 문항의 언어로 어떻게 옮겨지는지, 왜 그 과정에서 이런 혼란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 혼란을 통해 고등학교 윤리 수업에서 무엇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공개 메모이다. 설명의 핵심은 칸트에게 중요한 것이 범죄자의 자기 처벌 동의가 아니라, 처벌 가능한 행위의 책임귀속과 형벌법의 공적 정당화라는 데 있다. 그러나 중요한 교육적 요청은 학생들이 이 결론으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나아가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칸트가 맞섰던 문제제기, 곧 형벌은 동의에서 정당화되는가, 공리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책임 있는 인격을 처벌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질문들을 실제 수업 안에서 다시 작동시키는 데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고민이 이런 문답적 탐구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적절한 조력을 받을 수 있을 때, 고전의 깊이를 체험하게 하는 윤리교육의 주요 시도의 유용성이 비로소 확인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글의 성격
이 글은 전공자들도 허덕대고 해석이 갈리기도 하는 칸트 문헌에 대한 교사나 학생의 이해 부족을 지적하는 글이 아니다. 문제는 훨씬 구조적이다. 하나의 수능형 쟁점은 교육과정, EBS식 요약, 평가원의 선지 구성, 칸트 원문, 현대 주석서의 해석 사이에서 생긴다. 교육과정은 사형제와 형벌을 교정적 정의의 관점에서 탐구하도록 요구하지만, 실제 수능형 학습에서는 칸트, 베카리아, 루소의 사회계약·사형제·형벌권 논쟁이 매우 짧은 선지의 형태로 제시된다.
아래에서 문항 전문은 복제하지 않고, 공개 시험 자료에서 확인 가능한 문항 식별 정보와 짧은 선지 표지만 남긴다. 칸트 원문은 Akademie-Ausgabe 표기, 특히 Die Metaphysik der Sitten의 법론 중 Strafrecht 대목인 AA VI:331-335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 면에서 이 글 자체도 칸트 형벌론의 정당성을 완결적으로 평가하는 글은 되지 못한다. 여기서 주로 하는 일은 칸트가 실제로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특히 형벌권을 범죄자의 처벌 동의에서 끌어내지 않았다는 점을 문헌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그 문헌적 입장 뒤에 놓인 논변이다. 칸트에게 형벌이 예방, 교화, 사회 전체의 이익만을 위한 수단이 되면 범죄자는 타인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된다. 형벌권이 범죄자의 자기처분 동의에서 나온다면 범죄자가 자기 자신의 재판관이 되는 모순이 생긴다. 또 범죄행위가 단순한 자연적 사건에 불과하다면 처벌은 성립할 수 없고, 그 행위가 자유로운 행위자에게 귀속될 수 있을 때에만 형벌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윤리교육에서 더 필요한 작업은 바로 이 논변들을 수업 안에서 다루는 데 있다. 칸트가 왜 공리적 형벌론과 동의론을 거부했는지, 응보와 책임귀속의 논변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사형제 논쟁에서 어떤 한계를 갖는지까지 학생들과 함께 따져 보는 일이다.
학생들이 마주하는 어려움
학생들이 이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고교 교재와 수능 대비 자료는 대체로 칸트를 다음과 같이 묶어 가르친다.
- 칸트는 응보주의자이다.
- 형벌은 범죄자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단순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 형벌의 기준은 보복법 또는 동등성이다.
-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
- 형벌권의 기초는 범인의 동의가 아니다.
-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목적적 존재로 대우되어야 한다.
수업과 평가의 현실에서는 이런 축약이 일정하게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묶음이 논증의 연결 없이 암기 항목으로 제시될 때 곧바로 긴장이 생긴다. 범인의 동의가 형벌권의 기초가 아니라면, 사회계약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범죄자를 현상체 인간으로 설명한다면, 그는 왜 여전히 목적적 존재인가. 사형은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인데, 어떻게 인격성 존중과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은 지엽적 의문이 아니라, 칸트 텍스트 자체가 요구하는 층위 구별을 감지한 질문이다.
문항이 묻는 두 가지 쟁점
최근 기출에서 문제되는 선지는 크게 두 묶음으로 나뉜다. 하나는 “범죄자가 자기 처벌을 의욕하거나 동의했기 때문에 처벌받는가”를 부정하는 묶음이고, 다른 하나는 “처벌받는 범죄자도 여전히 인격적 존재인가”를 묻는 묶음이다. 두 묶음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첫째 묶음은 형벌권의 근거를 묻고, 둘째 묶음은 처벌받는 자의 규범적 지위를 묻는다.
| 시험 | 선지 기능 | 출제상 기능 | 문헌적 대응 |
|---|---|---|---|
| 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 2016-06-02 시행, 생활과 윤리 12번 |
범죄자가 응분의 보복을 의욕했기 때문에 처벌받는가 | 거짓으로 처리되는 동의·의욕 부정 선지 | AA VI:335의 “형벌을 의욕한 것이 아니라 가벌적 행위를 의욕했다”는 구별 |
|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2021-06-03 시행, 생활과 윤리 19번 |
형벌에 대한 범인의 동의가 형벌권의 기초가 아니다 | 참으로 처리되는 베카리아 비판 축 | 사회계약 안에는 자기 생명 처분 약속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AA VI:335 |
| 2026학년도 6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14번 |
형벌 받아야 할 자의 동의가 형벌권의 기초가 아니다 |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와 같은 계열의 반복 출제 | 형벌권을 범죄자의 실제 동의에 근거시키지 않는 칸트의 공법적 구조 |
|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13번 |
사형은 살인범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는 정당한 형벌이다 | 칸트 입장으로 참인 선지로 처리됨 | AA VI:331의 단순 수단화 금지와 AA VI:333-334의 살인·사형 논증 결합 |
| 2021학년도 수능 생활과 윤리 19번 |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목적적 존재로 대우되어야 한다 | 칸트 입장으로 참인 선지로 처리됨 | 범죄자도 물권의 대상이나 단순한 위험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인격성 논점 |
|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9번 |
살인자에 대한 사형은 그의 인격성을 존중하는 것임을 간과한다 | 문항 구조상 오답 선지. 다만 명제 자체가 칸트에게 틀렸다는 뜻은 아님 | 비판 방향과 사상가 관계를 묻는 선지에서 칸트식 배경 지식이 전제됨 |
특히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의 경우, 해당 선지가 오답이라는 사실만으로 “칸트는 사형이 살인자의 인격성을 존중한다고 보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된다. 그 문항에서는 누가 누구에게 어떤 비판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고, 평가원식 정리에서는 오히려 칸트가 살인자에 대한 사형을 인격성 존중과 연결한다는 배경 이해가 작동한다.
교육과정과 수능의 간격
교육과정 자체는 이 논점을 원문 수준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2015 개정 생활과 윤리의 성취기준 [12생윤03-02]는 사형 제도를 교정적 정의의 관점에서 비판 또는 정당화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2022 개정 현대사회와 윤리의 [12현윤04-03]은 사형 제도와 형벌을 교정적 정의의 관점에서 비판 또는 정당화할 수 있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두 교육과정의 성취기준 문장 자체가 칸트, 베카리아, 루소, 사회계약, 보복법, 동등성, 예지체/현상체 구분을 직접 열거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수능 문항이 다루는 지식은 교육과정의 넓은 주제에서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수능 대비 과정에서 형성된 심화 학습층에 속한다. 여기에는 일정한 교육적 정당성이 있다. 사형제와 교정적 정의를 다루려면 응보주의, 공리주의, 사회계약론, 법적 책임의 문제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 문항이 지나치게 축약될 경우, 학생은 지문에서 추론했다기보다 원문 또는 EBS식 배경 명제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판단하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간격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과정의 탐구형 언어, 수능의 선지형 언어, EBS의 시험 대비형 요약, 칸트 원문의 기술적 난해함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 현상이다.
표준 요약의 효용과 한계
EBS 해설과 수능특강·수능완성 계열 자료는 칸트를 대체로 시험에 필요한 표준 묶음으로 정리한다. 응보주의, 보복법, 동등성, 살인자의 사형, 형벌의 공리주의적 정당화 부정, 범인의 동의 부정, 목적적 존재로서의 범죄자라는 묶음이다. 이 정리는 학생이 기본 지형을 확보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정리는 세 가지 층위를 쉽게 섞는다. 첫째, 사회계약은 실제 동의인가, 이성의 이념인가. 둘째, 범죄자는 처벌을 의욕했는가, 아니면 처벌 가능한 행위가 그에게 귀속되는가. 셋째, 범죄자를 존중한다는 말은 그의 선호를 들어준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를 책임능력 있는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뜻인가. 이 셋이 구별되지 않으면, 학생은 깊이 생각할수록 선지를 더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학습 실패가 아니라, 요약된 명제들이 아직 논증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칸트 원문의 기준점
논의의 기준은 『윤리형이상학』 「법론」의 형벌권 대목이다. 여기서 중요한 원문의 논증 축은 네 가지다.
| 원문 위치 | 핵심 명제 | 교육적 의미 |
|---|---|---|
| AA VI:331 | 사법적 형벌, 곧 재판상 형벌은 범죄자 자신이나 사회의 다른 선을 위한 한낱 수단으로 부과될 수 없다. | 칸트가 공리주의적 형벌 정당화에 반대하는 기본 축이다. 동시에 범죄자를 물건처럼 다루지 말라는 인격성 논점의 출발점이다. |
| AA VI:333-334 | 살인에는 사형 외에 정의를 충족시킬 동등한 보복이 없다고 칸트는 주장한다. | 이것이 칸트의 사형제 옹호 결론이다. 그러나 이 결론은 오늘날 사형제 찬반과 그대로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
| AA VI:335 | 사람은 형벌을 의욕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가벌적 행위를 의욕했기 때문에 형벌을 받는다. | “범죄자가 응분의 보복을 의욕했다”는 식의 선지가 왜 틀리는지 설명하는 핵심이다. |
| AA VI:335 | 사회계약 안에는 자신이 처벌받고 자기 생명을 처분한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칸트가 베카리아의 사형 반대 논증을 거부하는 결정적 대목이다. 형벌권은 범죄자의 자기처분 동의에서 나오지 않는다. |
이 마지막 대목은 특히 중요하다. 칸트는 베카리아가 사형의 부당성을 논증하면서 전제한 “사회계약 안의 자기 생명 처분 약속”을 거부한다. 독일어 원문의 짧은 표지는 “im Socialcontract ist gar nicht das Versprechen enthalten” 이다. 말하자면, 사회계약 안에는 “처벌받고 그리하여 자기 자신과 자기 생명을 처분하겠다”는 약속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이 점을 놓치면 칸트를 “경험적 동의는 아니지만 예지적 동의는 있다”는 식으로 다시 동의론 안에 넣게 된다.
베카리아와 칸트의 차이
베카리아의 논증은 대체로 이렇게 재구성할 수 있다. 사형이 사회계약에 포함되려면 각자가 “내가 살인하면 내 생명을 잃는 데 동의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자기 생명을 처분할 수 없으므로 그런 동의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형은 정당하지 않다.
칸트는 이 논증의 전제를 거부한다. 칸트에게 형벌권은 범죄자의 “처벌받겠다”는 약속에서 생기지 않는다. 만일 형벌권의 근거가 그런 약속이라면, 범죄자가 자기 자신이 처벌받을 만한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며, 결국 범죄자가 자기 자신의 재판관이 되는 모순이 생긴다. 그래서 칸트에게 사형을 구술하는 것은 국민 각자의 자기처분 의사가 아니라 재판소, 곧 공적 정의이다. 여기서 원문은 das Gericht (die öffentliche Gerechtigkeit)이다.
그러므로 “형벌에 대한 범인의 동의가 형벌권의 기초가 아니다”라는 선지는 칸트 원문과 잘 맞는다. 문제는 그 다음 설명이다. 이를 “경험적 인간은 동의하지 않지만 예지적 인간은 자기 사형에 동의한다”고 말하면, 칸트가 피하려 한 동의 구조가 다시 들어온다. 더 안전한 표현은 다음이다.
예지적 자아는 범죄를 의욕하거나 자기 사형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법을 입법한다. 현상계의 범죄행위는 그 형벌법 아래에서 자유로운 행위자에게 귀속된다.
예지체와 현상체: 설명 층위의 구별
학생들이 가장 크게 혼란을 겪는 지점은 “범죄자=현상적 자아”라는 식의 도식이다. 이 표현은 고교 수업에서 빠른 정리를 위해 쓰일 수는 있지만, 그대로 두면 오해를 낳기 쉽다. 칸트가 말하는 예지체 인간과 현상체 인간의 구별은 범죄자 안에 서로 분리된 두 존재자가 들어 있다는 뜻으로 읽기보다, 동일한 인간의 행위를 자연 인과의 질서, 자유와 귀속의 질서, 법적 입법과 판정의 질서에서 각각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구별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하다.
범죄행위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발생한 외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공적 재판과 법적 판정이 직접 다루는 대상은 현상계의 행위이다. 그러나 그 행위가 단순한 자연적 사건이라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자유로운 행위자에게 귀속될 수 있는 행위로 판단될 때 비로소 형벌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핵심은 “예지적 자아가 범죄를 의욕했다”가 아니라 “현상계의 범죄행위가 자유로운 행위자에게 귀속된다”이다.
여기서 칸트의 Wille와 Willkür 구별을 교육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대략 Wille는 법을 세우는 이성적·입법적 의지의 층위이고, Willkür는 행위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선택의지의 층위이다. 형벌법을 입법적으로 의욕하는 것은 Wille의 층위이고, 범죄행위가 행위자에게 귀속되는 것은 Willkür와 외적 행위의 층위와 관련된다. 이 구별을 알면 “처벌을 의욕한다”와 “범죄행위를 의욕한다” 사이의 혼란이 줄어든다.
인격 존중은 처벌 동의에 근거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보정은 “존중” 개념이다. 학생들이 “사형이 어떻게 살인범을 목적 그 자체로 존중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일상어에서 존중은 흔히 상대의 의사, 선호, 동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 형벌론에서 문제되는 존중은 그런 뜻이 아니다.
칸트에게 정당한 형벌은 범죄자를 단순한 위험물, 병든 대상, 교정의 재료, 사회 안정의 수단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형벌은 그가 저지른 행위를 책임질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그를 대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적 그 자체로 존중”은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준다”가 아니라 “그 사람을 책임능력 있는 이성적 존재로 대우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의 인격 존중은 범죄자의 처벌 의사나 동의를 승인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네가 처벌에 동의했으니 처벌한다”는 구조가 아니라, “너를 책임귀속 가능한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구조이다.
이 점을 놓치면 국내 입문서나 수험서의 설명도 다시 동의 기반 설명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예컨대 “사형수의 예지체적 인격의 이성적 동의”라는 표현은 약하게 읽으면 “경험적 동의가 아니라 이성적 정당화”를 말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하게 읽어 “사형수의 예지체적 인격이 자기 사형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이는 칸트의 베카리아 비판과 충돌한다. 칸트에게 핵심은 사형수의 동의가 아니라 순수한 법적 이성의 형벌법 입법과 공적 재판기관에 의한 책임귀속이다.
대표 해석의 방향
현대 주석서와 SEP식 정리는 칸트를 단순한 “사형 찬성 응보주의자”로만 읽지 않는다. 물론 칸트의 형벌론이 응보주의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범죄자의 죄책이 형벌의 정당화 근거이고, 형벌은 범죄자나 사회의 다른 선을 위한 단순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 정교한 해석들은 다음 요소들을 함께 본다.
- 사회계약은 역사적 약속이나 실제 동의가 아니라 이성의 이념이다.
- 형벌은 사적 복수가 아니라 공적 법상태, 공적 재판기관, 공적 정의의 문제이다.
- 응보는 범죄자를 억지 효과의 수단으로만 쓰는 것을 막는 제한 원리이기도 하다.
- 범죄자는 처벌받더라도 인격성을 완전히 상실한 물건이 아니다.
- 칸트의 사형제 옹호가 오늘날에도 정당한지는 별도의 비판적 문제이다.
SEP의 「Kant’s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y」는 칸트에게 사회계약이 경험적 동의가 아니라 이성의 이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그 구별이 형벌론에서도 다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Legal Punishment」 항목은 형벌 정당화론의 큰 지형 속에서 응보주의, 결과주의, 동의론, 계약주의를 구별하게 해 준다. 「Kant’s Moral Philosophy」 항목은 인간성 정식의 “목적 그 자체”가 사람을 단순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는 구조와 연결되며, 악행을 한 사람도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평가 의도와 그 한계
평가원의 출제 의도를 선의로 재구성하면, 관련 문항들은 단순 암기를 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칸트, 베카리아, 루소, 공리주의적 형벌론 사이의 차이를 비교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형벌권의 기초가 범인의 동의가 아니다”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목적적 존재이다”는 선지는 칸트 법철학의 중요한 논점을 시험장 언어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시험 문항의 언어에는 동시에 한계가 있다. 첫째, 지문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학생은 원문 배경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둘째, 선지는 “존중”, “동의”, “의욕”, “인격성” 같은 단어를 일상어와 전문어 사이에서 사용한다. 셋째, 사상가 사이의 비판 방향을 묻는 문항에서는 어떤 명제가 그 자체로 참인지, 특정 화자가 특정 상대에게 제기할 수 있는 비판인지가 분리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난이도가 개념 이해의 단계적 추론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용어를 매우 짧은 선지 안에 밀어 넣고 그 축약이 낳는 오해 가능성에 기대어 형성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물론 출제자가 학생을 혼란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지체”, “현상체”, “동의”, “인격성 존중” 같은 말이 충분한 설명 없이 선지 안에 놓이면, 학생은 주장의 구조를 따져 보기보다 어떤 수험용 공식이 평가원식 정답으로 채택되어 있는지를 맞히게 된다. 이런 방식의 난이도는 교과 역량 평가라기보다 암호 해독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다.
이런 경우 표준 표현에 익숙한 학생은 쉽게 답을 고를 수 있지만, 개념 사이의 긴장을 감지한 학생은 오히려 판단을 잠시 멈추게 된다. 그는 “그렇다면 칸트가 동의론자인가”, “현상체라면 왜 존엄한가”, “사형이 존중이라는 말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묻게 된다. 평가가 추론적 이해를 목표로 한다면, 이런 질문을 한 학생이 불리해지는 방식으로 문항이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
윤리교육의 목표: 정답 암기가 아니라 이유의 탐구
윤리교육의 가치는 특정 사상가의 결론을 빠르게 식별하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윤리 수업에서 다루는 명제들은 결론만 떼어 놓으면 외워야 할 표어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실제 교육적 의미는 그 결론이 어떤 이유에서 나오고, 어떤 반론을 감당해야 하며, 어떤 삶과 제도의 문제에 닿는지 따져 보는 과정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평가 역시 학생이 어떤 명제를 알고 있는가만이 아니라, 그 명제의 근거와 적용 범위, 경쟁하는 이유들을 구별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칸트 형벌론을 가르치는 진짜 이유는 “칸트는 사형 찬성”이라는 표지를 기억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또한 칸트의 핵심 논지를 정리해 주는 데서도 끝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칸트가 대결했던 문제제기를 교실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형벌은 범죄자의 동의에서 정당화되는가. 국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가. 사람을 책임 있는 인격으로 존중한다는 말은 처벌을 완화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오히려 책임귀속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인가. 학생은 이런 질문들을 따라가며 왜 칸트가 형벌을 공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거부했는지, 왜 범죄자의 실제 동의가 형벌권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는지, 그럼에도 왜 범죄자를 책임능력 있는 인격으로 대우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논증이 오늘날 사형제 정당화로 그대로 이어지는지 따져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은 단순히 정답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유를 구분하고 논증을 재구성하며 반론의 힘을 평가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철학 수업의 기본 장면은 교사가 정답 공식을 전달하고 학생이 그것을 복제하는 장면이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함께 개념을 묻고, 사례를 비교하고, 이유를 요구하며, 서로의 판단을 수정하는 탐구의 장이어야 한다. 도덕 판단에는 반드시 가르쳐야 할 규범적 기준이 있지만, 동시에 실제 쟁점에는 논쟁적이고 불확실한 지점이 남는다. 그러므로 윤리교육은 가치 기준을 형성하는 일과, 논쟁적 문제에 대해 이유를 묻고 검토하는 탐구를 함께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수능 문항의 난이도도 이 목표와 연결되어야 한다. 난이도는 학생이 더 긴 논증을 더 정확히 재구성하고, 개념의 쓰임을 구별하며, 주어진 정보로부터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만드는 데서 생겨야 한다. 난이도가 맥락 없는 전문용어의 암호를 이미 알고 있는지 여부에 과도하게 기대면, 윤리교육의 가치는 약화된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칸트 원문 전체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낯선 윤리적 주장 앞에서 “이 결론은 어떤 전제에서 나오는가”, “그 전제는 정당한가”, “반대 입장은 무엇을 문제 삼는가”라고 물을 수 있는 힘이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열어야 할 논점
고교 수업에서는 칸트 원문 전체를 가르칠 수 없다. 그러나 다음 세 단계는 학생이 정답 공식을 외우는 순서가 아니라, 하나의 법철학 논증을 따라가며 질문을 분화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 논점 | 수업에서 열어 줄 질문 | 구별해야 할 지점 |
|---|---|---|
| 1. 형벌권의 근거 | 범죄자는 왜 자기 처벌을 원해서가 아니라 공적 정의의 이름으로 처벌받는가. | 범죄자의 실제 동의, 사회계약의 이념, 순수한 법적 이성의 입법을 구별해야 한다. |
| 2. 책임귀속 | 현상계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자유로운 행위자에게 귀속될 수 있는가. | “예지적 자아가 범죄를 의욕했다”는 말과 “행위가 책임 있는 주체에게 귀속된다”는 말을 구별해야 한다. |
| 3. 인격성 존중 |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 어떻게 인격성 존중이라는 말과 함께 등장할 수 있는가. | 존중을 선호 충족이나 처벌 동의로 이해하는 방식과, 책임능력 있는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방식을 구별해야 한다. |
이 논의의 잠정적 정리는 다음처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은 결론 암기용 공식이 아니라, 이후에 원문과 반론을 함께 읽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범죄자는 자기 처벌에 동의했기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범죄자는 처벌 가능한 행위가 귀속되는 인격이므로, 처벌받을 때에도 단순한 수단이나 물건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이 정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칸트의 원의를 오해하지 않게 해 주지만, 칸트가 실제로 그러한 입장을 취하게 된 더 강한 논변 자체를 분석하고 평가하게 하지는 않는다. 정작 교과서나 교사용 보충자료에서 더 필요해 보이는 것도 이 대목이다. 수업의 더 풍부한 장면은 바로 그 다음 질문에서 열린다. 응보는 왜 공리보다 우선해야 하는가. 책임 있는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말은 왜 처벌의 완화가 아니라 책임귀속과 연결되는가. 그리고 그런 논리가 정말로 사형까지 정당화하는가. 윤리교육의 유용성은 이런 질문들을 학생들과 함께 감당할 수 있을 때 더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립스틴의 해석을 빌리면, 칸트의 주장은 대략 다음처럼 구조화된다. 범죄는 단순히 타인에게 해악을 끼친 사건이나 규칙 위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외적 자유가 하나의 공적 법 아래에서 양립해야 한다는 조건을 특정 행위자가 사적으로 예외화하는 일이다. 처벌은 그에게 고통을 덧붙이는 복수도, 장래 범죄를 줄이기 위한 수단만도 아니라, 그 예외화를 공적으로 무효화하여 법이 여전히 모두에게 같은 법으로 서 있음을 확인하는 제도적 응답이다. 한 평가자는 이런 점에서 베카리아식 동의 논증보다 칸트의 설명이 더 강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베카리아가 “누가 자기 생명을 내놓는 데 동의했는가”를 묻는다면, 칸트는 형벌권의 근거가 애초에 그런 사적 동의가 아니라고 답한다. 이 설명은 왜 처벌이 사적 보복이 아니라 공적 재판의 문제인지, 왜 범죄자도 단순한 위험물이 아니라 책임 있는 인격으로 대우되어야 하는지를 하나의 구조 안에서 설명한다.
당연히 고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이런 전문 주석가 수준의 엄밀한 논증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논증을 제시하는 토론을 수행해 내리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윤리교과의 매개자는 학생들이 이미 던지는 질문 속에서 이런 논증의 새싹을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 “처벌은 그냥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 아닌가”, “범죄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처벌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한가”, “왜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그를 인격으로 대우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공적 법, 자유, 책임, 응보, 인간성 존중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다. 교사는 이 질문들이 단순한 의문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보조하면서, 학생들이 베카리아의 문제제기가 무엇을 잘 포착하는지, 칸트의 응답이 무엇을 더 잘 설명하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칸트의 논증이 정말 사형의 정당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따져 보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사상가 비교는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했는가”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논증의 설명력과 한계를 판단하는 윤리적 탐구가 된다.
출제와 평가에서 주의할 점
이 논점은 수능에서 출제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사형제, 교정적 정의, 응보주의, 공리주의, 사회계약론을 비교하는 것은 좋은 윤리교육 주제이다. 다만 그 비교가 탐구와 평가 역량을 동시에 살리려면 다음 조건이 필요하다.
- “동의”라는 말을 쓸 때 실제 동의, 사회계약의 가능 동의, 순수 법적 이성의 입법적 승인, 범죄자의 자기처분 약속을 구별해야 한다.
- “범죄자”라는 말을 쓸 때 처벌 동의의 주체인지, 외적 행위의 귀속 대상인지, 목적적 존재로서의 인격인지 문맥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사형은 인격성 존중”이라는 표현은 독립 구호처럼 쓰지 말고, 단순 수단화 금지와 책임귀속의 맥락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 사상가 간 비판 관계를 묻는 문항에서는 명제 자체의 참·거짓과 특정 비판 방향의 적절성을 분리해 보이도록 해야 한다.
- 지문에서 추론 가능한 문제를 만들려면 원문 배경지식을 대체할 최소한의 정보가 지문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 고난도 문항이라도 “원문 문장을 미리 아는가”만을 측정해서는 안 된다. 추론 능력을 평가하려면 단서가 주어져야 한다.
- 출제는 학생이 논증을 재구성하고, 개념의 의미 변화를 식별하고, 상반된 이유들을 비교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축약된 용어에 대한 익숙함 자체가 난이도의 주된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적으로 가장 아쉬운 상황은 학생이 더 정확히 생각했기 때문에 더 불리해지는 경우이다. 칸트의 형벌론은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은 수업에서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수 있다. 시험 문항 역시 그 사고를 유도해야지, 축약된 암기 명제를 이미 알고 있는지만 확인하는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의 판단
현재 한국의 윤리교과교육은 어려운 위치에 있다.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사형제와 형벌을 교정적 정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능이 요구하는 비교 지식 때문에 교사는 칸트, 베카리아, 루소의 상당히 세밀한 원문 논점을 수업 가능한 분량으로 축약해서 가르쳐야 한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은 교실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수능형 칸트 선지가 모두 피상적 오해에 불과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실제로 해당 선지들은 AA VI:331-335의 중요한 축을 건드린다. 그러나 그 선지들이 너무 짧고, 해설이 시험 대비형 구호로만 제시될 때 학생들은 칸트의 논증을 이해하기보다 “칸트는 사형 찬성, 범인의 동의 아님, 그래도 인격 존중”이라는 조합을 외우게 된다. 이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나은 방향은 칸트의 결론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이 나온 법철학 논의의 층위를 분리해 보여 주는 것이다. 사회계약은 실제 동의가 아니라 이성의 이념이다. 형벌권은 범죄자의 자기처분 약속이 아니라 공적 정의의 문제이다. 범죄행위는 현상계의 외적 행위이지만 자유로운 행위자에게 귀속될 때 처벌 가능하다. 인격 존중은 범죄자의 처벌 동의에 관한 말이 아니라, 그를 책임능력 있는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구별들은 최종 암기 문항이 아니라 탐구의 입구여야 한다. 학생들이 이 구별을 바탕으로 칸트의 논증을 재구성하고, 베카리아의 사형 반대 논증과 루소의 사회계약론적 사형 정당화 논점을 함께 검토하되(그 검토가 시험 선지를 가르기 위한 단순한 구분과 대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늘날 사형제 논쟁에 어떤 함의와 한계가 있는지 스스로 따져 볼 때 비로소 윤리교육의 본래 가치가 살아난다.
자료와 근거
아래 자료는 이 글을 작성하면서 확인한 공개 자료와 대표 해석 자료이다. 문항 전문이나 저작권 보호 자료의 장문 복제는 피하고, 식별 가능한 공개 링크와 요약만 사용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CDN, 2026학년도 6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문제지 및 정답표.
- EBSi,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문제지.
- EBSi, 2024학년도 9월 모의평가 생활과 윤리 정답 및 해설.
- EBSi, EBS 2026학년도 수능특강 사회탐구영역 생활과 윤리.
- 2017학년도 6월, 2021학년도 9월, 2021학년도 수능, 2022학년도 6월 생활과 윤리 문항 식별은 KICE 저작권 표기가 있는 공개 문제지·정답표 mirror와 해설 자료를 대조했다. 예: 2017학년도 6월 자료 묶음, 2021학년도 9월 문제지, 2021학년도 수능 문제지, 2022학년도 6월 문제지 텍스트.
- NCIC 국가교육과정정보센터, 교육과정 원문 자료실, 2015·2022 개정 도덕과 교육과정.
-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2. 특히 제1부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중 형벌권 대목을 참조했다. 서지 정보.
- 손제연, 「칸트의 법(Recht) 관념―『법이론』에 등장하는 ‘외적 자유’ 개념을 중심으로―」, 『법철학연구』 제21권 제3호, 2018, 53-88쪽, DOI: 10.22286/kjlp.2018.21.3.003.
- 오세혁, 『법철학사』 제2판, 세창출판사, 2012. 국내 법철학 입문·법철학사 서술에서 칸트 형벌론이 어떻게 정리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비판적 참조 문헌으로 보았다.
- 아르투어 카우프만, 『법철학』, 김영환 옮김, 나남, 2007. 칸트 형벌론을 경험적 의욕이 아니라 이성적 정당화의 차원에서 설명하는 법철학사적 서술의 한 예로 참조했다.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Kant’s Social and Political Philosophy.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Legal Punishment.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Kant’s Moral Philosophy.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hilosophy of Education.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Critical Thinking.
- Michael Hand, Towards a Theory of Moral Education, Journal of Philosophy of Education 48(4), 2014.
- Matthew Lipman, Thinking in Community, in Thinking in Education.
- Marcello Fantasia, Kant on Punishment, The Italian Law Journal 7(1), 2021.
- Arthur Ripstein, Hindering a Hindrance to Freedom.
Version Note
This public note was first drafted on 2026-05-24. It is a public-facing analysis note, not a full scholarly article. Direct citation of Kant should use the Akademie-Ausgabe pagination and a published translation where appropriate.